이제 한국 음식은 정말 세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편의점 김밥, 불닭볶음면, 허니버터칩, 꼬북칩 같은 평범한 한국 음식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키고 있다.

2024년 K-푸드 플러스(농식품+전후방산업) 수출액이 130.3억 달러로 역대 최고실적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이를 증명한다. 2015년 35억 1000만 달러에서 2024년 70억 2000만 달러로 두 배 가량 성장한 K-푸드의 이야기는 단순한 수출 성공담이 아니다. 작은 간식과 편의점 음식이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 따뜻하고 신기한 여정을 들여다보자.
편의점 음식의 역습: 김밥이 코스트코를 점령하다
누가 생각했겠나. 편의점 김밥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찾는 아이템이 될 줄을. 김에 밥과 여러 재료를 넣어 돌돌 만 이 단순한 음식은 사실 속재료의 무궁무진한 변주가 매력이다. 참치김밥, 불고기김밥, 야채김밥까지, 작은 김밥 하나에 담긴 한국인의 창의성이 외국인들을 매혹시켰다.
결정적 순간은 넷플릭스 드라마들이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찾아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김밥은 미국에서 '머스트 트라이' 음식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미국 코스트코와 트레이더 조에서 냉동 김밥이 매진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일상적인 편의점 김밥이 해외에서는 '이국적이면서도 건강한 간편식'으로 인식된 것이다.
김밥과 함께 컵떡볶이, 각종 HMR(가정간편식)도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4년 대미국 수출에서 쌀가공식품(김밥 포함)이 51.0% 증가한 173.2백만 달러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이 변화의 크기를 말해준다. 간편하지만 든든하고,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한국의 분식 문화가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불닭볶음면과 매운맛 열풍: 12년 만에 1조 원 브랜드의 탄생
불닭볶음면의 성공 스토리는 정말 극적이다. 2012년 출시된 이 라면은 유튜브의 '파이어 누들 챌린지'를 통해 세계적 밈이 되었다. 눈물 쏙 빼는 매운맛에 도전하는 영상이 수백만 뷰를 기록하며, 불닭은 '한국의 아이덴티티'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숫자로 보는 불닭볶음면의 위력은 압도적이다. 삼양식품은 2024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3442억 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불닭볶음면 중심의 수출 비중이 2023년 68%에서 2024년 77%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해외 수출액이 약 4800억 원에 이른다. 회사 전체 매출의 약 60%를 불닭볶음면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 제품이 기업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놀라운 것은 현재 한국 라면 수출의 70%가 불닭볶음면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삼양식품은 이르면 올해 불닭볶음면 단일 수출액 1조 원을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품을 출시한 지 단 12년 만의 일이다. 지금은 까르보나라 맛, 치즈 맛, 짜장 맛 등 수십 가지 시리즈로 확장되어 K-푸드 대표 브랜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K-스낵의 기적: 허니버터칩에서 꼬북칩까지
한국의 과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2014년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은 새로운 조합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SNS 인증숏 열풍은 해외로까지 퍼져나갔다. 10년 동안 누적 매출 5500억 원, 판매량 3억 6000만 봉지라는 기록은 국민 1인당 7 봉지씩 허니버터를 즐긴 셈이다.
허니버터칩은 현재 중국, 베트남, 일본, 미국 등 20개 나라에 수출되면서 'K감자칩' 선봉에 서 있다. 해태제과는 허니버터칩 덕분에 2015년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90.6% 늘어 기사회생에 성공했고, 주식시장에 재상장까지 했다. 한 제품이 기업 전체를 구해낸 것이다.
꼬북칩의 글로벌 성공도 주목할 만하다. 2017년 출시된 이 네 겹 스낵은 올해 3월 기준 글로벌 누적 매출액 4800억 원을 달성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10대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파이브 빌로우 1598개 전 매장에 입점된 최초의 K-푸드가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한류 열풍에 맞춰 한국어 '맛있다'를 그대로 옮긴 '마시타(Masita)'로 출시되어 현지화의 성공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 간식의 재발견: 달고나와 K-콘텐츠의 만남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달고나 뽑기 장면은 정말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설탕과 베이킹소다로 만든 단순한 간식이 글로벌 열풍으로 번진 것이다. 해외 페스티벌에서는 '달고나 체험' 부스가 인기 코너가 되었고, 카페에서는 달고나 라테와 달고나 케이크가 메뉴로 등장했다.
감말랭이도 흥미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한국 농촌의 가을을 상징하던 이 전통 간식이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헬시 디저트'로 소개되며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통 간식이 현대적인 디저트로 진화하며, 한국 디저트 문화가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블랙핑크 제니가 즐겨 먹는다고 언급한 바나나킥도 다시금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978년에 나온 이 오래된 과자가 K-팝 팬덤의 힘을 타고 한국을 대표하는 스낵 브랜드 중 하나로 부활한 것이다. K-팝 팬들에게는 아이돌이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 활동이 되었다.
한류가 만든 K-푸드 생태계: 음식이 문화가 되다
K-푸드의 성공 뒤에는 한류라는 강력한 문화적 동력이 있다. BTS 멤버들이 방송에서 즐겨 먹던 치킨, 라면, 떡볶이는 팬들에게 곧바로 '체험하고 싶은 음식'이 되었다. 드라마 속 치맥 장면, 김밥을 먹는 모습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설명하는 창문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역할도 컸다.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도 함께 알려졌다. 외국인들은 드라마 속 음식을 직접 따라 해보고 싶어 했고, 온라인에는 'K-드라마 푸드 챌린지'가 생겨났다. K-푸드 레시피 영상들이 수백만 뷰를 기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현재 미국이 K-푸드 수출 1위 시장으로 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과자류, 라면, 냉동김밥 등이 SNS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었고, 현지 스포츠 행사나 대학과 연계한 K-푸드 체험 기회를 통해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매장과 파이브빌로우 같은 소매점 입점이 확대되면서 접근성도 크게 개선되었다.
한국 음식은 이제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세계인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맛있는 통로가 되었다. 작고 가벼운 과자 하나, 편의점에서 파는 김밥 한 줄이 때로는 한 나라의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전통의 뿌리와 현대의 창의성, 그리고 한류와 SNS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결과를 바라보며, 우리 일상 속 소소한 음식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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