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 그날의 함성이 시작된 곳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군사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민의 자유를 억압했을 때, 이에 맞서 광주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 중심에는 금남로와 분수대가 있는 5·18 민주광장이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도심의 광장이 아니라, 군사독재에 항거한 시민들의 집결지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이 터져 나온 상징적 공간이었다.
1971년에 설치된 분수대를 중심으로 한 이 광장에서 시민들은 각종 집회를 열며 항쟁 의지를 불태웠고, 5·18 민주화운동은 단순한 지역 사건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다.
광주 5·18 민주광장은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며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민들의 외침과 희생, 분수대에서 울려 퍼진 민주주의의 소리
5월 18일부터 시작된 시위는 곧 전 시민적 저항으로 번졌다. 먼저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고,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광주는 거대한 민주항쟁의 현장이 되었다.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주도한 '민족민주화대성회'가 민주광장 분수대 주변에서 열렸다.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군사통치 종식과 민주화를 촉구했다.
특히 5월 16일에는 경찰의 협조하에 야간횃불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엄군은 무자비한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했고, 5월 21일 정오경부터는 집단발포까지 자행했다.
도청 앞과 금남로 일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총칼 앞에서도 시민들은 서로를 지키며 끝까지 민주주의를 외쳤다. 당시 민주광장은 집회와 시위의 중심지였으며, 희생자들의 눈물과 분노, 그리고 자유를 향한 열망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후,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며 자치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민주광장은 시민들의 민주적 자치질서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다.
광주 정신의 확산, 세계가 인정한 민주화 운동의 가치
광주의 희생은 한국 사회 전체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당시에는 왜곡과 침묵 속에 가려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5·18의 진실은 밝혀졌고, 광주 정신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민주광장은 이제 단순히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려는 한국인의 의지를 상징한다.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연대와 희생은 이후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한국 민주화의 불길을 다시 지폈다.
실제로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도 광주 시민들은 7월 초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1980년 5월 이후 처음으로 다시 모여 이한열 열사 추도식을 가졌다.
오늘날 5·18 민주화운동은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전 세계 인권 운동의 사례로도 연구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5·18 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환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기여했으며, 나아가 냉전 체제를 깨트리는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1980년대 이후 필리핀, 타이,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한국의 뒤를 따라 다양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광주 정신은 아시아 민주주의 확산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민주 광장에서의 의미,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
현재 광주 5·18 민주광장은 기념과 교육, 그리고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매년 기념식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며,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을 함께 나눈다.
광장의 분수대는 2023년 음악분수로 새 단장되어 시민들의 사진명소가 되었지만, 사적지로 지정된 원형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1980년 5월 민주화대성회 당시 시민들이 손에 들었던 횃불을 미디어아트로 형상화한 '빛의 분수대' 프로젝트도 진행되어, 과거의 민주주의 열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민주광장을 찾는 발걸음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다.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쳤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광장에서 울려 퍼진다.
그 외침은 오늘의 우리에게 자유와 정의, 평화의 가치를 지키라고 끊임없이 당부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기리며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정신적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1982년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바탕으로 황석영이 작사하고 김종률이 작곡한 이 노래는 5·18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곡이 되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우리가 이어가야 할 민주주의의 정신
5·18 민주광장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0년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광주를 장악한 시민군이 보여준 자치공동체 정신은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당시 시민들은 1천여 명에 이르는 시민군의 매끼 식사를 자발적으로 지어다 준 주먹밥으로 해결했고, 혈액 부족으로 곤란을 겪던 병원들을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헌혈에 참여했다.
경찰에 의한 치안유지 활동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이나 신용금고 같은 금융기관에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범죄율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훨씬 낮았다.
이곳은 여전히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의지를 다지는 공간이다. 광주 시민들이 분수대 앞에서 외쳤던 "민주주의 만세", "계엄해제", "전두환 퇴진"의 함성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지켜내기 어려운 가치인지를 깨닫게 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꽃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일본, 대만, 홍콩, 중국, 태국,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등지에서 각국 언어로 불리고 있는 것도 그 증거다.
5·18 민주광장은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며, 미래의 희망을 품어가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메시지를 통해 민주주의를 향한 끝없는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방문 안내
- 5·18 민주광장
-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 일대 (지하철 금남로 4가 역 인근)
- 특징: 1980년 민주항쟁의 중심지, 현재는 기념 공간과 시민 문화행사 개최지
- 국립 5·18 민주묘지
-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 40번지
- 운영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연중무휴)
- 특징: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 공간, 추모탑과 기록관 운영
'한국의 터 > 역사와 기억의 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쟁 기념관과 DMZ 평화길 · 전쟁의 기억에서 평화의 길로 (0) | 2025.10.06 |
|---|---|
| 광화문 광장(촛불 광장) · 세계가 주목한 K 민주주의의 힘 (0) | 2025.10.05 |
| 제주 4·3 사건과 여순 사건 – 해방 후 비극과 이념 갈등의 상처 (1) | 2025.10.03 |
| 강제동원 관련지 – 군산·목포·울산에 남은 수탈의 흔적 (0) | 2025.10.02 |
| 독립기념관(천안) –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집대성한 공간 (0) | 2025.10.01 |
| 안중근 의사 기념관 - 동양 평화를 꿈꾼 의거의 정신 (0) | 2025.09.30 |
| 탑골공원과 3·1운동 기념탑 – 평화적 만세운동의 발상지 (0) | 2025.09.29 |
| 서대문형무소 – 독립운동가들의 투옥과 희생 (0) | 2025.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