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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터/역사와 기억의 터

경복궁 – 명성황후 시해와 국권 상실의 현장

by Storyteller Joo 2025. 9. 26.

 

 

경복궁은 1395년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와 함께 창건한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가 불러서 군자 만년토록 그대 큰 복을 누리리라'는 시경의 구절에서 따온 '경복'이라는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악산을 주산으로 삼아 넓은 지형에 건물을 배치한 경복궁은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함께 한양 도시 계획의 중심축이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390여 칸의 규모로 다른 나라 궁궐에 비해 검소했지만, 태조와 태종을 거쳐 세종 대에 이르러 집현전과 경회루, 간의대 등이 추가되며 조선 문화의 꽃을 피웠다. 특히 이곳에서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되었으며, 조선의 정치와 문화, 외교가 이뤄지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270여 년간 폐허로 남아있다가 1867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을미사변, 치욕의 새벽

 

1895년 10월 8일 새벽 4시, 경복궁 내 건청궁에서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와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다. 명성황후는 삼국간섭 이후 러시아와의 외교를 통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견제하려 했던 인물로, 일본에게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경복궁, 한국 역사, 을미사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되었다. 전임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한 달 전부터 왕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며 준비작업을 했고, 10월 3일 일본 공사관 밀실에서 구체적인 시해 계획이 확정되었다. 일본은 이 작전을 암호명 '여우사냥'이라 불렀다. 새벽에 흥선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군은 건청궁 곤녕합의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칼로 찔러 시해했다. 더욱 참혹한 것은 시신을 녹원의 소나무 숲으로 옮겨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석유를 부어 불태운 것이었다.

 

이 사건은 러시아 건축가 세 레딘 사바틴과 미국인 윌리엄 다이 대령, 그리고 궁녀와 환관들이 직접 목격하여 일본의 만행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일본은 미우라 등 관련자 48명을 형식적으로 재판한 후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석방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다.

 

국권 상실의 전주곡과 아관파천

 

명성황후의 시해는 단순한 개인적 비극을 넘어 조선의 국권 상실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고종은 자신도 언제 일본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1896년 2월 11일 새벽, 궁녀가 타는 가마에 몸을 숨기고 경복궁을 탈출했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은 조선 왕이 자국의 궁궐을 버리고 외국 공관에 몸을 맡긴 치욕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조선의 정치적 중심은 경복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고종은 1897년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채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 개최와 1926년 조선총독부 건설로 수많은 전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었다. 광화문마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뒤로 옮겨져 궁궐의 중심축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조선 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오늘날의 경복궁, 복원된 자존심

 

현재 경복궁은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시작으로 2001년 흥례문 권역 복원, 2010년 광화문 목조 복원, 2023년 광화문 월대 복원을 거쳐 2045년까지 각 권역별 주요 전각들을 복원할 계획이다.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 개방되며,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건청궁의 특별 개방이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극의 현장인 이곳은 평상시에는 공개되지 않다가 최근 특별 전시를 통해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곤녕합의 옥호루와 장안당 등이 복원되어 을미사변의 참상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매년 진행되는 '경복궁 별빛야행'과 같은 야간 개방 행사는 고궁의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의 교훈을 전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경복궁을 거닐며 근정전의 웅장함과 경회루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건청궁 일대를 지날 때는 이곳에서 벌어진 치욕적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국권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 교육의 현장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욕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경복궁의 이야기는 과거의 비극에만 머물지 않는다. 을미사변과 국권 상실의 교훈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주권을 되찾으려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을미의병은 일제에 맞선 조직적 저항의 시작이었고, 이는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마침내 광복을 이뤄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복궁에서 벌어진 치욕을 딛고 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K-컬처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첨단 기술로 인류 문명에 기여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불굴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다. 경복궁은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서서 과거의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증언하며, 평화와 번영을 이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경복궁을 찾는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전각과 정원에서 감동을 받는 것과 동시에, 이곳에 새겨진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의 평화를 지켜가는 것, 그것이 경복궁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소중한 교훈이다.

 

 

 

경복궁의 가을 풍경

 

 

경복궁 방문 안내

    • 위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대, 대표적 조선왕조 궁궐. 경복궁 안내실 전화번호는 02-3700-3900
    • 관람시간
    • 1월~2월, 11월~1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00)
    • 3월~5월, 9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
    • 6월~8월: 09:00~18:30 (입장 마감 17:30)
  • 휴관일: 매주 화요일 (공휴일과 겹치면 개방, 다음 첫 비공휴일을 휴무일로 지정)
  • 입장 및 해설 프로그램:
    •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입장 가능 
    • 정규 해설 프로그램은 10인 미만 개인 관람객은 예약 없이 참여 가능, 단체(10인 이상)는 사전 예약 필요
    • 2025년 경회루 특별관람은 사전 온라인 예약 및 현장 잔여석 입장이 가능하며, 관람은 1일 3회(10:00, 14:00, 16:00), 회당 약 40분, 무료(경복궁 입장료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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