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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터/역사와 기억의 터

행주산성 – 임진왜란을 막아낸 민족의 저력

by Storyteller Joo 2025. 9. 25.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양산 정상에 자리한 행주산성은 한국사에서 가장 극적인 역전승의 무대다. 해발 124m의 야트막한 산 위에 자리한 이 산성이 1593년 2월 12일, 동아시아 전역을 뒤흔든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꾼 결정적 현장이 되었다.

 

삼국시대 초기 백제 시대에 처음 축성되어 고려 시대까지 사용된 이곳은, 조선 시대에 대규모 개축을 거쳐 조선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역사적 무대가 되었다.

 

 

행주산성 임진왜란을 막아낸 민족의 저력 행주산성 야경
*본 블로그에 사용된 이미지는 저작권 프리 자료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재구성한 것으로, 저작권 침해 우려가 없습니다.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다. 조선군은 의병과 승병을 포함해 약 2300명에 불과했지만, 일본군은 총대장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끄는 7개 부대 3만여 명의 정예 병력이었다.

 

하지만 험준한 지형을 활용한 전략과 새로운 무기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려는 간절한 의지가 어우러져 기적 같은 승리를 만들어냈다. 이 전투는 조선이 절망적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으로 기억된다.

 

 

 

 

행주산성, 임진왜란을 막아낸 민족의 저력

권율 장군과 조선군의 필사적 항전

 

행주대첩의 승리에는 권율 장군의 탁월한 지휘력과 혁신적 전술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산성에 이중 목책을 설치하고 토제를 쌓아 조총을 피할 수 있도록 했으며, 병사들에게 재를 담은 주머니를 허리에 차게 하는 세심한 준비를 했다.

 

특히 변이중이 만든 화차와 권율이 직접 고안한 수차석포, 이순신으로부터 제공받은 천자총통 등 조선의 과학 기술력이 집약된 무기들이 맹활약했다.

 

전투가 시작된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 권율은 모든 군사를 모아놓고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이제 적세를 살펴보면 그 양과 질에서 우리가 맨손으로 당해낼 도리가 없으니, 오직 한 가지 죽음으로써 나라의 두터운 은혜에 보답하는 길밖에 없다"라고 외치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일본군이 7개 부대로 나누어 9차례에 걸쳐 종일토록 맹공격을 가했지만, 조선군은 지형의 이점을 살려 끝까지 버텼다.

특히 전투가 절정에 달했을 때 화살이 떨어진 위기의 순간, 충청수사 정걸이 판옥선을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살 수만 발을 보급해 주었다.

 

이런 지원과 조선군의 필사적 항전이 어우러져 마침내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으며, 권율은 추격전에서 130여 명의 목을 베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조선 역사를 바꾼 전환점의 의미

 

행주대첩은 단순한 전투 승리를 넘어서 임진왜란 전체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벽제관에서 명군이 패배한 후 고립된 상황에서도 조선군이 거둔 이 승리는 사기가 꺾였던 조선과 명군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일본군은 한양 재점령 계획을 포기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후 1593년 3월 노원평 전투에서의 패배로 한성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다.

 

명나라 제독 이여송도 평양으로 회군하던 중 행주대첩 소식을 듣고 벽제관에서 급히 회군한 것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명나라에서도 이 승리를 치하하며 권율에게 홍비단 4 필과 은 50냥을 포상으로 전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대승이었다.

 

이 전공으로 권율은 도원수에 오르며 조선군 전체를 지휘하게 되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틀어 조선 최고의 육군 지휘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의 행주산성,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

 

현재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로 지정되어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복원된 415m의 토성 성곽과 1603년에 권율의 부하 장수들이 세운 행주대첩 초건비, 그리고 1963년 지역민들이 세우고 1970년 보수한 높이 15m의 거대한 행주대첩비가 당시의 영광을 기리고 있다. 권율 장군의 사당인 충장사와 기념관, 충의정 등의 시설이 마련되어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매년 4월에는 '행주가 예술이야'라는 문화축제가 열린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조명과 한강의 노을을 배경으로 행주대첩을 재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조선 무기 만들기, 국궁 체험, 한복 체험 등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특히 충의정에서 진행되는 미디어아트 '다시 피는 행주'와 드론쇼, 불꽃놀이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동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성 정상에 오르면 한강과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왜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였는지 직접 체감할 수 있다. 2021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되어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행주관람차와 음성·수어 영상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어, 모든 사람이 역사를 배우고 감동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평화를 향한 용기와 희망의 교훈

 

행주산성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 전쟁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곳에는 압도적 열세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조선군의 용기, 나라를 지키려는 백성들의 간절한 마음, 그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민족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권율 장군 자신도 생전에 행주대첩보다 이치 전투를 더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지지만, 행주대첩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그 이상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강국이자 문화 강국으로 성장했다. K-컬처가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첨단 기술로 인류 문명에 기여하고 있지만, 그 뿌리에는 행주산성과 같은 역사적 순간들이 있다. 외침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선조들의 정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지혜와 용기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행주산성을 찾는 것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우리 정체성의 뿌리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교훈은 평화와 용기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게 이어주는 살아있는 유산이 된다. 행주산성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서라면 작은 힘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역사다.

 

 

행주산성 방문 안내

 

  • 위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로 15번 길 89 (고양시 행주산성 역사공원) 
  • 관람시간:
    • 주간: 3월~10월 오전 9시 ~ 오후 6시 (입장 마감 오후 5시)
    • 동절기: 11월~2월 오전 9시 ~ 오후 5시 (입장 마감 오후 4시) 
    • 야간개장: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 오후 6시~밤 10시 (입장 마감 21:00) 
    • 단, 장맛비, 태풍, 폭설 등의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 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 전 고양시 문화재관리부서 문의 권장 
  • 입장료: 무료 
  • 문화관광해설: 10:00~17:00 (동절기에는 16:00까지) 
  • 주차 안내:
    • 부설 주차장 1, 2 주차장 확보
    • 주차 요금: 1 구획당 약 2,000원 (카드결제 가능) 
  • 행주산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양 시청 홈페이지(https://www.goyang.go.kr/haengju/index.do)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