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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터/역사와 기억의 터

탑골공원과 3·1운동 기념탑 – 평화적 만세운동의 발상지

by Storyteller Joo 2025. 9. 29.

만약 당신이 서울 종로의 번화가를 걷다가 문득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면, 탑골공원의 삼일문을 지나보길 권한다. 그 순간 도심의 소음은 잦아들고, 1919년 3월 1일의 뜨거운 함성이 귓가에 울려 퍼질 것이다.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자리한 탑골공원은 단순한 도심의 쉼터가 아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자,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진 평화 시위의 발상지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탑골공원으로 모여든 시민과 학생들이 역사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총칼을 들지 않고 목숨을 건 비폭력 평화 시위였다는 점에서 3·1 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탑골공원과 3.1운동 기념탑 -평화적 만세운동의 발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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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에서 울려 퍼진 정재용의 독립선언서 낭독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3·1 운동의 핵심 무대는 바로 팔각정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을 기다리던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들 앞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분위기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바로 그때, 경신학교 출신의 정재용이 팔각정 단상에 올라 주머니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내 들고 당당하게 낭독하기 시작했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4천여 명의 군중들은 감격해 "으악" 하는 함성으로 장내를 진동시켰다.

 

정재용의 용기 있는 행동이 없었다면 3·1 운동은 태화관의 조용한 선언으로만 그쳤을지도 모른다. 약 10분간 38자 46행 8 소절의 본문과 공약 3장을 일사천리로 낭독한 후 "조선 독립만세"를 선창 하자, 군중들은 모자를 벗어 하늘로 날리며 서로 부둥켜안으며 독립의 기쁨을 나누었다.

 

팔각정은 198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자리에서 역사의 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으로 번져간 만세운동의 불꽃과 역사적 의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두 갈래로 나뉘어 종로·서울역·정동·이화학당·서대문 등을 행진하며 곧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학생, 농민, 상인, 심지어 어린이와 여성까지 참여한 이 운동은 계층과 세대를 초월한 민족적 저항이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집회 인수가 106만여 명, 사망자 7,509명, 구속자 4만 7천여 명에 달했다. 당시 조선 전체 인구가 1,678만 명이었음을 고려하면 실로 거족적인 운동이었다.

 

일제는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했고, 수많은 이들이 체포·고문·살해당했지만, 독립을 향한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3·1 운동은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비폭력 시위에서 시작해 점차 폭력투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국외로도 확산되어 만주, 연해주, 도쿄, 오사카, 필라델피아 등에서도 독립시위가 벌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운동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한국 독립운동사의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기념탑과 부조로 새겨진 역사의 기억

 

오늘날 탑골공원에는 다양한 기념시설들이 3·1 운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1963년 8월 15일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아 건립된 3·1 독립선언 기념탑에는 독립선언서 전문과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비록 1979년 공원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현재는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1966년 5월에 제막한 높이 10m의 3·1 운동 부조는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순간부터 시민들의 만세 시위, 일제의 탄압, 이에 굴복하지 않는 독립투사의 모습까지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일본군이 총과 칼로 민중을 위협하는 가운데서도 손을 들어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당시의 절박함과 용기를 잘 보여준다.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은 한 손을 가슴에 올린 채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어"라는 그의 신념을 형상화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역사 체험의 현장

 

지금의 탑골공원은 도심 속 쉼터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찾아와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며 시간을 보낸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마치 살아있는 역사책을 보는 듯하다. 때로는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어르신이 팔각정에서 소라고둥을 불기도 하고, 멀리서 풍물놀이 소리가 들려와 100년 전 그날의 현장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걸을 때마다, 1919년 3월 1일 그날의 함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십 층 석탑과 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가 자리한 이곳에서, 우리는 불교문화유산과 근현대사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평화와 자유는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며, 수많은 선열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서 있다. 탑골공원의 삼일문을 지날 때마다, 팔각정에 올라 단상에 서볼 때마다, 우리는 정재용과 수천 명 시민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그들이 꿈꾼 자유로운 조국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역사는 늘 교훈을 품고 있으며, 탑골공원은 그 교훈을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탑골공원 방문 안내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가 38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3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관람시간: 연중무휴, 24시간 개방 (1988년부터 무료 개방)

입장료: 무료

주요 관람 포인트:

  • 팔각정 (서울시 유형문화재, 3·1 운동 독립선언서 낭독 현장)
  • 3·1 운동 기념 부조 (1966년 제막, 높이 10m)
  • 의암 손병희 선생 동상
  • 원각사지 십 층 석탑 (국보 제2호)
  • 대원각사비 (보물 제3호)
  • 한용운 시비

특징: 도심 속에서 한국 근현대사와 불교문화유산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교통편: 종각역, 종로3가역, 을지로 3가 역 모두 접근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