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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멋/공연예술과 놀이

마당 극, 광장에서 피어난 민중의 목소리

by Storyteller Joo 2025. 9. 11.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서 젊은 연극인들이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무대도 없고 번쩍이는 조명도 없지만, 배우들의 열정 넘치는 몸짓과 외침이 지나가던 학생들의 발걸음을 멈춘다.

 

"여기 한 번 보세요!" 관객을 직접 부르며 시작되는 이 공연이 바로 마당극이다. 1980년대처럼 광장에서 민중의 함성과 함께하는 그런 역동적인 모습은 이제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일부 연극인들과 문화단체들이 마당극의 소중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과거의 절박함은 많이 사라졌을지 몰라도, 관객과 직접 호흡하며 현실을 이야기하는 마당극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마당극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하나의 집단적 체험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연극 형식이다.

 

극장은 물론 무대와 객석의 경계조차 없는 완전히 열린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진짜 호흡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니,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마당극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특히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당시 사회의 모순과 억압, 빈곤과 부조리를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로 풀어내며 민중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전통 탈춤과 판소리, 굿 등의 민속예술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기존의 엘리트 중심 연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즉흥성과 현장성이 강하고,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담는다는 점에서 마당극은 민중문화운동의 핵심 수단으로 당당히 기능해 왔다.

 

격동의 시대가 만들어낸 저항 예술의 탄생

 

마당극은 그냥 예술 형식 하나로 태어난 게 아니다.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소외된 민중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는 사회적 운동의 일환으로 발전한 것이다.

 

유신 체제라는 숨 막히는 억압적 정치 상황과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모순이 극에 달한 그 시기, 기존의 점잖은 연극으로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낀 젊은 연극인들이 새로운 형식을 절실하게 모색한 결과였던 것이다.

 

당시 대학가와 노동 현장, 농촌 마을 곳곳에서 마당극은 비판과 저항, 연대와 희망의 뜨거운 메시지를 담아내는 소중한 창구로 작동했다. 이는 단순한 공연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녔다.

 

검열이 정말 심했던 그 시절, 직접적인 정치적 표현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마당극은 해학과 풍자를 통해 우회적으로 현실 비판을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전통 탈춤에서 양반을 신나게 조롱하듯, 마당극에서도 권력자들은 속 시원한 웃음거리가 되었다.

 

대학 연극 동아리와 민중문화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길거리와 공터, 공장 마당에서 직접 공연을 벌이면서 마당극은 점차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연희단 거리패', '한국민족예술인 총 연합' 등의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마당극을 발전시켰고, 이들의 열정적인 활동은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정말 중요한 축을 이뤘다.

 

형식 면에서는 한국 전통 연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서 멋지게 활용했고, 내용적으로는 정치와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서양 연극의 딱딱한 사실주의 연출법보다는 우리 전통 연희의 자유분방함과 즉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 거다.

 

이런 점에서 마당극은 서양식 연극이 따라올 수 없는 생생한 현장성과 날카로운 비판성을 갖춘 독자적인 문화 표현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마당극 광장에서 피어난 민중의 소리
*본 블로그에 사용된 이미지는 저작권 프리 자료를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재구성한 것으로, 저작권 침해 우려가 없습니다.

 

경계 없는 무대,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극의 가장 신나는 특징은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정말히 허물어진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극장 연극에서는 무대와 객석이 명확히 구분되고, 관객은 조용히 앉아서 얌전하게 공연을 관람하는 게 예의다.

 

하지만 마당극에서는 이런 딱딱한 규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관객은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개입하며, 배우는 그냥 연기자가 아니라 상황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구성원이 된다.

 

이런 열린 구조는 연극을 훨씬 더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만들며, 현실에 대한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정말 효과적이다. 배우가 관객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직접 물어보고, 관객이 "그건 정말 틀렸어!"라고 시원하게 맞받아치는 상황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이런 쌍방향 소통은 서양의 브레히트 연극이 추구한 '소외 효과'와도 유사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놀이 문화에서 나온 훨씬 더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이야기 전개는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하며, 캐릭터들은 과장된 몸짓과 어투로 현실을 통쾌하게 풍자한다. 복잡한 심리 묘사보다는 선악이 분명한 인물들이 등장해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대중의 이해를 돕고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또 다른 매력적인 특징은 전통 음악과 춤, 노래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적 구성인데, 이는 관객의 몰입을 자연스럽게 도우며 주제에 쉽게 접근하게 한다.

 

꽹과리와 징, 장구 같은 전통 악기들이 등장하고, 판소리 창법을 활용한 구성진 노래들이 극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관객들도 함께 손뼉을 치고 추임새를 넣으며 공연에 신나게 참여했다.

 

무대 장치나 화려한 조명 없이도 이뤄지는 공연 방식은 이동성과 접근성을 크게 높였고, 그 덕분에 마당극은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었다.

 

트럭 한 대면 어디든 가서 공연할 수 있는 기동성은 마당극의 정말 큰 장점이었다. 이런 유연한 형식은 공연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극장이 아닌 일상 공간 속에서도 연극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시대, 마당극이 찾아가는 길

 

오늘날 마당극은 과거의 저항 정신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다층적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 직접적인 정치 저항의 절박한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마당극은 그 사회적 긴박성을 일부 잃었지만, 공동체 예술의 상징으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마당극은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마당극의 전통을 소중히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 반갑다. 환경 문제, 다문화 사회, 청년 실업, 젠더 갈등 등 새로운 사회 문제들을 마당극의 형식으로 다루는 의미 있는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교육, 공연, 축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어서, 마당극의 외연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현실적인 문제점들도 솔직히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관객과의 거리감이 커졌고, 콘텐츠가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성세대에서 젊은 세대로의 자연스러운 전승이 원활하지 않아 단절의 위험도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마당극이 다소 낡고 어려운 형식으로 인식되기도 해서 아쉽다.

 

마당극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와의 접점을 새롭게 설정하고,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열린 문화 플랫폼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SNS 시대의 소통 방식이나 코로나19 이후 완전히 변화한 공연 환경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마당극이 그랬듯, 지금도 이 연극 형식은 사회적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내는 도구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기후 변화, 사회적 불평등, 세대 갈등 등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마당극의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로 풀어낼 가능성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마당극은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이며, 민중이 스스로 만든 이야기의 소중한 장이다. 앞으로도 우리 곁에서 현실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나누는 마당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마당극에 관객으로 참여해보고 싶다면,  대전문화재단 https://dcaf.or.kr/web/index.do 서울문화포털 홈페이지 https://culture.seoul.go.kr/culture/main/main.do에서 자세한 공연 소식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