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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멋/전통의례와 생활문화

단오날 창포물 머리 감기 풍습 · 의미와 전통

by Storyteller Joo 2025. 9. 7.

 

학교 마당 한편에서 창포 우린 물이 담긴 대야 앞에 모인 아이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난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단옷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손끝을 창포물에 적셔본다.

 

할머니 세대의 기억 속에서나 살아 숨 쉬던 풍습이 이제는 교과서 속 전통이 되어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비록 냇가에서 여인들이 함께 모여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그런 정취 어린 풍경은 사라졌지만, 창포물 머리 감기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와 건강에 대한 간절한 염원만큼은 여전히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준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에 맞는 명절로, 설과 추석과 함께 한국의 3대 명절 중 하나로 꼽힌다. 단옷날은 농경 사회에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로, 사람들은 질병과 잡귀를 물리치고 건강과 풍요를 기원했다.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각종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풍습이 바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다. 창포는 예로부터 약재와 향으로 쓰이며 잡귀를 쫓는다고 믿어졌고, 단옷날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건강해지고 액운이 사라진다고 여겼다. 이 풍습은 단순한 미용법이 아니라 건강과 액막이, 그리고 공동체적 결속이 어우러진 종합적인 의례였다.

 

단오 명절의 깊은 뿌리와 다채로운 세시풍속

 

단오는 고대 중국의 '단오절'에서 유래해 삼국시대 무렵 한반도에 전해졌으며, 농경 사회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절기로 자리 잡았다. 중국에서는 굴원이라는 충신을 기리는 날로 여겨졌지만, 한국에서는 고유한 농경문화와 결합하면서 독특한 명절로 발전했다. 우리나라 단오의 특징은 중국과 달리 여성 중심의 축제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와 고려, 조선시대 문헌에도 단오 풍습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궁중에서 단오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단오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명절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더욱 체계적인 단오 문화가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단오가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명절이었으며, 궁중에서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부채와 약재를 하사했다. 이때 나누어준 부채를 '단오선'이라고 했는데, 여름 더위를 식히라는 의미였다. 또한 창포, 쑥, 익모초 같은 약재들을 하사하여 건강을 챙기도록 했다. 이는 왕이 백성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애민 정신의 표현이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씨름, 그네뛰기, 창포물 머리 감기 같은 풍습이 성행했다. 남자들은 씨름을 통해 힘을 겨루고, 여자들은 그네뛰기로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소원을 빌었다. 단오는 여름철 더위와 질병을 예방하는 날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여성들에게는 머리를 감고 치장을 새롭게 하는 특별한 날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인 『동국세시기』에는 "단옷날 부녀자들이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비녀를 꽂으며, 붉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그네를 뛴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단오가 여성들에게는 미를 가꾸고 치장하는 날이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단오는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건강과 미용, 풍요와 놀이가 결합된 종합적인 명절이었다.

 

 

단오날 창포물 머리감기 풍습 ㅣ 의미와 전통
신윤복,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35.2cm, 18세기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소장

 

창포물 머리 감기의 실용적 효과와 상징적 의미

 

단옷날 새벽, 사람들은 창포 뿌리를 잘게 썰어 물에 넣어 삶은 뒤 식혀서 머리를 감았다. 창포는 붓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연못이나 개울가의 습한 곳에서 자란다. 뿌리줄기에는 아사론, 오이게놀 같은 방향성 정유 성분이 들어 있어 특유의 향이 난다. 이 성분들은 실제로 항균과 방충 효과가 있어 머리카락과 두피 건강에 도움을 주었다.

 

창포의 효능은 『동의보감』에도 기록되어 있다. "창포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창포로 머리를 감으면 비듬이 없어지고 머리카락이 윤기가 난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창포물 머리 감기가 단순한 민속 풍습이 아니라, 실제 효과가 있는 전통 미용법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위생 효과를 넘어,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잡귀와 액운이 사라지고 일 년 내내 건강하다고 믿었다. 창포의 향이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여겨졌으며, 특히 여름철 유행하는 전염병을 막아준다고 믿어졌다. 이는 향기 치료의 개념으로, 현대 아로마세러피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창포는 향기가 좋아 여성들이 머리를 곱게 빗고 장신구를 더해 단오의 치장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재료였다. 창포물로 머리를 감은 후에는 머리에 창포 잎을 꽂기도 했는데, 이는 장식과 더불어 계속해서 향을 맡을 수 있게 하는 실용적 목적도 있었다.

 

이 풍습은 단순한 미용 행위가 아니라, 신체와 마음을 정결히 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상징적 의례였다.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창포물로 목욕을 시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이렇게 창포물 머리 감기는 개인의 청결과 건강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여름을 준비하는 중요한 풍습이었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새로운 문화적 가치

 

현대에는 단오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 행사나 지역 축제에서 재현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릉 단오제다. 강릉 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오 축제로, 10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강릉 단오제에서는 창포물 머리 감기 체험이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참여하여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전통의 의미를 되새기고, 과거 조상들의 생활 지혜를 직접 체험한다. 이는 단순한 관광 상품을 넘어, 전통문화의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각지의 문화재단이나 전통문화원에서는 단오절을 맞아 창포물 머리 감기 체험 행사를 개최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에서 인기가 높다. 아이들은 창포를 직접 삶아보고, 그 물로 머리를 감으며 조상들의 지혜를 몸으로 익힌다.

 

 

결론: 전통에서 현대로, 창포의 재발견

  단옷날 창포물 머리 감기는 단순한 위생 습관이 아니라, 건강과 미용, 주술적 보호가 결합된 전통 의례였다. 창포의 항균 성분과 특유의 향은 실제로 두피와 머리카락에 도움을 주었으며, 동시에 잡귀를 물리치고 건강을 지켜준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았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자연 속에서 발견한 지혜가 얼마나 과학적이고 실용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다행히 현재에도 창포의 전통적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다. 한국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에서 창포를 이용한 샴푸가 출시되고, 개인 업체들도 창포 우린 물로 만든 샴푸바나 탈모 샴푸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천연 성분을 선호하는 현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관심을 받는 길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강릉단오제를 비롯한 전통 축제에서도 여전히 창포물 머리 감기 체험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문화기관에서도 정기적으로 이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통이 단순히 보존되는 것을 넘어, 현대인들이 직접 참여하며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오랜 세월 전에만 있었던 우리 고유의 풍습으로만 남아 있지 않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흘러와 그 지혜로운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의 단오 문화가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빛나기를 바라본다.